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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전》 리뷰|조상의 업은 자손에게 대물림될까? 무당의 시선으로 본 끝나지 않은 의식

cheonjidang 2026. 9. 18. 20:10

목차


    죽은 조상이 남긴 것은 재산과 성씨뿐일까?

    어떤 집안에서는 좋은 기운과 덕이 이어진다고 말하고, 또 어떤 집안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불행이 몇 대에 걸쳐 반복되기도 한다.

    영화 《유전》을 보면서 내가 가장 눈여겨본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대물림.’

    처음에는 한 가족이 겪는 비극과 정신적인 붕괴를 보여주는 영화처럼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윗대에서 시작된 일이 정말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모두 끝나는 것일까?

     

    영화 줄거리 -할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상한 일들

    《유전》은 미니어처 작가 애니의 어머니 엘런이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애니에게는 남편 스티브와 아들 피터, 딸 찰리가 있다. 그런데 죽은 할머니 엘런은 생전에 유독 손녀 찰리에게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찰리 역시 평범한 아이와는 조금 다르게 묘사된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는 여동생 찰리를 데리고 파티에 갔다가 끔찍한 사고를 겪는다. 견과류가 들어간 음식을 먹은 찰리가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피터가 급하게 병원으로 데려가던 중 찰리는 목숨을 잃는다.

    딸의 죽음 이후 가족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애니는 슬픔과 분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피터 역시 자신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전》은 가족의 상실과 트라우마를 그린 심리 공포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앤이라는 여자가 애니에게 접근하면서 영화의 방향이 달라진다.

    죽은 딸을 다시 만나고 싶었던 엄마

    조앤은 자신도 가족을 잃었다며 애니에게 접근하고,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며 강령 의식을 알려준다.

    딸을 잃은 애니에게 이보다 강한 유혹이 있을까.

    결국 애니는 가족들과 함께 찰리를 불러내려 한다.

    촛불을 켜고 주문을 외우자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벌어진다.

    애니는 딸이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부른다고 해서 정말 내가 찾던 영혼이 오는 것일까?”

    무당인 나도 영혼을 청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설정이 아니라 무업을 하고 있는 나의 경험과 개인적인 견해다.

    전문적으로 무업을 하는 나 역시 조상을 청할 때는 매우 조심한다.

    내가 특정한 한 분의 조상을 청한다고 해서 내가 느끼기에 그분만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식을 하다 보면 수많은 영혼이 함께 모여든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그 가운데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가려내야 하는지 분별하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일반인이 호기심이나 그리움만으로 영혼을 불러내려고 하는 행동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평소 귀신을 보거나 영적인 현상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고 싶은 존재를 불렀다고 해서 반드시 그 존재가 왔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찾는 사람보다 훨씬 고약하고 악한 존재라고 느껴지는 것이 접근할 가능성도 나는 경계한다.

    그래서 《유전》에서 애니가 죽은 딸을 만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조앤이 알려준 의식을 따라 하는 장면은 내게 상당히 위험하게 다가왔다.

    조상의 업과 덕은 후손에게 이어질까?

    영화가 진행되면서 애니는 우연히 만났다고 생각했던 조앤이 사실 자신의 어머니 엘런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비밀스러운 집단과 파이몬이라는 존재를 숭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난다.

    결국 할머니가 시작한 일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딸 애니를 지나 손녀 찰리와 손자 피터에게까지 이어진다.

    나는 신점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조상의 업과 덕을 함께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상담 중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한 집안이 있었다.

    그 집안은 유난히 남자들의 명줄이 짧다고 했다. 상담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3대에 걸쳐 집안 남성들이 50대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점사를 통해 그 집안의 윗대를 살펴보았고, 4대조 할아버지와 관련하여 사람이나 동물을 포함한 많은 살생의 업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당시 나는 집안에 반복되던 죽음을 조상이 남긴 업과 연결하여 해석했다.

    물론 이것은 의학적·과학적으로 그 죽음의 원인이 조상의 행동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무속인인 내가 점사를 통해 받아들이고 해석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나는 조상이 쌓은 덕이나 업이 후손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끝내지 못한 의식은 끝난 것일까?

    《유전》에서 내가 또 하나 중요하게 본 부분이 있다.

    의식의 끝맺음이다.

    나는 조상이 행했던 어떤 의식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그 영향이 자손에게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무속에서 의식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부르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시작했는지, 무엇을 청했는지, 그리고 시작한 일을 어떻게 끝내고 보내는지까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의식을 시작하는 것보다 제대로 끝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전》 속 할머니가 시작한 일 역시 자신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후손들이 그 결과를 떠안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제목 Hereditary, ‘유전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더욱 섬뜩하게 다가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악마가 아니었다

    《유전》에는 파이몬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게 가장 무서웠던 것은 악마의 모습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 이미 나보다 앞선 세대에서 시작되어 있었다는 것.

    피터와 찰리는 할머니가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애니 역시 어머니가 남겨놓은 일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래서 《유전》은 단순한 악마 영화라기보다 가족에게 무엇이 대물림되는가를 묻는 영화로 내게 남았다.

    우리는 부모에게 얼굴과 체질을 물려받는다. 성장 과정에서 가족의 말과 행동, 상처와 습관도 영향을 받는다.

    영화는 여기에 훨씬 극단적인 오컬트적 상상력을 더한다.

    조상이 남긴 업과 끝나지 않은 의식까지 후손에게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무당의 시선으로 본 《유전》

    《유전》을 보고 나면 제목의 의미가 오래 남는다.

    처음에는 가족력과 정신적 문제가 ‘유전’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그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할머니가 시작한 의식, 죽은 딸을 다시 만나고 싶어 했던 엄마,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끝에 서게 된 자식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모든 문은 열어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열었다면 어떻게 닫을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간절함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불러들이려는 행동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무업을 하는 나의 생각이다.

    《유전》은 그런 인간의 그리움과 가족의 상처 위에 ‘대물림되는 의식’이라는 오컬트적 상상력을 얹은 영화였다.

    그래서 내게 《유전》은 귀신보다 끝나지 않은 것이 더 무서운 영화였다.

    참고자료

    영화 《유전》(Hereditary, 2018), 아리 애스터(Ari Aster) 감독
    A24, 《Hereditary》 공식 작품 정보
    Netflix, 《유전》(Hereditary) 공식 작품 페이지 https://www.netflix.com/title/80238910?utm_source=chatgp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