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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커맨》 리뷰|신앙은 언제 믿음에서 광신이 되는가? 무당의 시선으로 본 집단신앙과 희생제의

cheonjidang 2026. 9. 19. 01:00

목차


    사람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정말 귀신일까요?

    영화 《위커맨(The Wicker Man)》을 다시 떠올리면서 저는 오히려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그 믿음을 집단 전체가 공유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위커맨》에는 우리가 흔히 오컬트 영화에서 기대하는 귀신이나 악령이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빙의도 없고 퇴마 의식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오랫동안 오컬트와 포크 호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보이지 않는 귀신이 아니라, 자신들이 옳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실종된 소녀를 찾아 외딴섬으로 들어간 경찰

    1973년 개봉한 로빈 하디 감독의 《위커맨》은 스코틀랜드의 외딴섬 서머아일을 배경으로 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경찰관 닐 하위 경사는 어느 날 익명의 편지를 받습니다.

    서머아일이라는 섬에서 로완 모리슨이라는 12살 소녀가 사라졌으니 찾아달라는 내용입니다.

    하위는 수상비행기를 타고 섬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섬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상한 일이 이어집니다.

    사진을 보여주며 로완을 아느냐고 물어도 주민들은 그런 아이를 모른다고 말합니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하위가 조사할수록 로완이라는 아이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흔적이 하나씩 발견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섬에서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하위가 더욱 충격을 받는 것은 섬 주민들의 신앙입니다.

    그가 믿는 기독교와 달리 주민들은 자연과 풍요, 생식과 수확을 중요하게 여기는 오래된 신앙과 의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섬을 이끄는 사람은 로드 서머아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섬의 농업을 발전시키면서 주민들에게 자연과 풍요의 옛 신들에 대한 믿음을 다시 받아들이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하위에게 이런 모습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교적인 세계입니다.

    영화는 여기서 흥미로운 구도를 만듭니다.

    한쪽에는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확신하는 하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신들의 신과 제의를 확신하는 섬 주민들이 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믿음을 쉽게 의심하지 않습니다.

    로완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

    조사를 계속하던 하위는 결국 로완의 무덤을 찾아냅니다.

    허가를 받아 무덤을 파헤치지만 관 속에서 나온 것은 아이의 시신이 아닙니다.

    토끼의 사체가 들어 있습니다.

    하위는 로완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섬의 농작물 수확이 실패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주민들이 풍년을 되찾기 위해 로완을 인간 제물로 바치려는 것은 아닐까?

    마침 섬에서는 메이데이 축제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하위는 이제 경찰관이 아니라 한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움직입니다.

    드디어 발견된 로완

    축제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가면과 의상을 입고 행렬을 벌입니다.

    하위는 변장을 하고 그들 사이에 숨어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살아 있는 로완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한 하위는 아이를 데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로완은 자신을 구해준 하위에게서 벗어나 주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제야 하위는 깨닫습니다.

    로완은 처음부터 제물이 아니었습니다.

    실종 신고도, 주민들의 거짓말도, 무덤도, 자신이 로완을 찾아내도록 만든 과정도 모두 하나의 거대한 함정이었습니다.

    진짜 제물은 하위였습니다.

    거대한 위커맨 안에 들어간 사람

    지난해 흉작을 겪은 주민들은 풍요를 되찾기 위한 희생물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사람이 하위였습니다.

    결국 그는 절벽 위에 세워진 거대한 사람 모양의 나무 구조물, ‘위커맨’ 안에 갇힙니다.

    하위는 주민들에게 외칩니다.

    자신을 죽인다고 농사가 잘되는 것이 아니며 다음 해에도 흉작이 계속된다면 결국 주민들은 로드 서머아일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람들의 노랫소리에 묻힙니다.

    불길이 위커맨을 삼키기 시작합니다.

    하위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민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며 노래합니다.

    서로 다른 두 믿음이 한 장소에서 충돌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위커맨이 불길 속에서 무너져 내리며 영화는 끝납니다.

    귀신 한 명 나오지 않는데 왜 이렇게 무서울까

    《위커맨》은 단순히 ‘이교도는 무섭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국영화협회 BFI의 Screenonline 역시 이 작품에는 명백한 초자연적 요소가 없으며, 공포영화이면서 탐정 스릴러와 종교적 우화의 성격까지 가진 독특한 작품으로 설명합니다.

    저는 이 영화의 공포가 믿음 그 자체보다 믿음을 의심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시작된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 다른 생각을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집단 안에서 같은 믿음이 반복되고 강화됩니다.

    결국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마저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한 정당한 희생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법당을 찾아왔던 두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 신을 믿어서 지금 네 삶에 무엇이 남았니?”

    한 번은 제가 알 수 없는 종교집단에 깊이 빠져 있던 분이 상담을 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러 온 사람이 오히려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모시는 신을 버리고, 법당도 접고, 자신들이 믿는 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믿는 신을 믿어서 지금 네 삶에 무엇이 남았니?”

    젊은 나이였지만 안정적인 직장도 없었고 가족과도 멀어져 있었으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거의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분이 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같은 집단의 신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과 친구를 등지고 세상과 멀어졌다면, 지금 네 삶이 더 나아졌는지 먼저 너 자신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그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 저를 설득하려 했고 결국 저는 강하게 상담을 중단시키고 돌려보냈습니다.

    당시에는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마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 흔들릴 때 오히려 더 강하게 그것을 붙잡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폐쇄적인 종교집단에 빠졌다가 빠져나왔다며 법당을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굉장히 불안해했고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이 쫓기고 있으며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계속 물었습니다.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요?”

    실제로 누군가 그분을 추적하거나 감시하고 있었는지는 제가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분이 느끼는 두려움은 매우 컸다는 것입니다.

    집단에서는 벗어났지만 마음까지 그곳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는 못한 듯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믿음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려 했고, 또 한 사람은 그곳을 빠져나온 뒤에도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위커맨》을 보면서 저는 이 두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굿과 제의, 그리고 맹신은 같은 것이 아니다

    저는 무당입니다.

    굿을 하고 기도를 올리고 치성을 드립니다.

    그래서 영화 속 제의를 단순히 ‘이상한 의식’이라고 바라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마음을 의지했고, 풍년과 건강,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다양한 의례를 만들어왔습니다.

    우리 무속에도 공동체의 안녕과 개인의 평안을 기원하는 여러 의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의를 행한다는 것과 맹목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믿음을 강제로 빼앗을 필요도 없고, 내가 믿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신앙 때문에 한 사람의 현실적인 삶이 무너지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되며, 자신의 판단까지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맡기게 된다면 한 번쯤 멈춰서 자신의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만큼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 믿음이 지금 나를 어떻게 살아가게 하고 있는가?”

    무당이자 심리상담을 공부한 제가 《위커맨》에서 본 것

    사람에게 믿음은 때로 큰 힘이 됩니다.

    견디기 어려운 순간을 버티게 하고, 마음을 추스르게 하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도록 돕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려움과 고립을 이용해 사람을 통제하거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위커맨》에서 주민들은 자신들이 악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에게는 바로 그 점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악하다고 생각하면서 악을 행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으면서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때로는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커맨》을 다시 보고

    이 영화에는 화려한 악령도, 귀신도, 퇴마사도 없습니다.

    그 대신 사람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 의심하지 않는 사람, 따르는 사람, 그리고 그 믿음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커맨》은 1973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영화인데도 지금 다시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수많은 신념과 주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무속인이기에 신의 존재와 신앙을 가볍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을 믿는 것과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맡기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위커맨》의 마지막 불길을 보면서 제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신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말하는 신을 아무런 의심 없이 따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더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돕고 있는가?

    귀신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아도 《위커맨》이 무서운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괴물은 화면 밖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의심할 수 없게 된 믿음 안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