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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개봉한 영화 《엑소시스트(The Exorcist)》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오컬트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머리가 돌아가는 소녀,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는 아이, 그 앞에서 기도문을 외우는 두 명의 신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한 번쯤은 접했을 만큼 유명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영화를 떠올려보니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서운 악령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 사람에게 일어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을 우리는 어디까지 정신과 육체의 문제로 보고, 어디서부터 영적인 문제라고 판단할 것인가?”
무당이면서 심리상담을 공부한 나에게 《엑소시스트》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평범했던 소녀 레건에게 시작된 이상한 변화
영화는 이라크의 고대 유적에서 시작된다.
노신부 메린은 발굴 현장에서 악령 파주주를 상징하는 유물을 발견한다. 마치 오래전 끝나지 않았던 싸움이 다시 시작될 것을 예고하는 듯한 장면이다.
이후 이야기는 미국 워싱턴 D.C.로 옮겨간다.
배우 크리스 맥닐은 열두 살 딸 레건과 함께 살고 있다. 밝고 평범했던 레건은 어느 날 위저보드를 통해 자신을 ‘캡틴 하우디’라고 소개하는 존재와 대화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상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집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침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레건의 성격은 거칠어지고 욕설과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며, 점차 이전의 레건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간다.
영화는 처음부터 ‘악령’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내가 눈여겨본 부분이 있다.
레건의 엄마는 딸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처음부터 구마사제를 찾아가지 않는다.
병원을 먼저 찾는다.
레건은 여러 의학적 검사를 받고 정신적인 문제의 가능성도 살펴본다. 하지만 뚜렷한 원인은 발견되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이 과정이 상당히 길게 묘사된다.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이 《엑소시스트》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영적인 현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원인을 확인하려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크리스는 예수회 신부이자 정신의학적 배경을 가진 데이미언 카라스를 찾아간다.
흥미롭게도 카라스 역시 처음부터 레건이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믿지 않는다.
그 역시 다른 가능성을 의심하고 확인한다.
그러나 레건에게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계속되면서 마침내 교회의 허가를 받아 구마 의식이 시작된다.
악령이 공격하는 것은 육체만이 아니었다
구마 경험이 있는 메린 신부가 찾아오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향한다.
메린과 카라스는 레건의 방에서 구마 의식을 시작한다.
그러나 악령은 단순히 괴력을 보여주거나 사람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대방의 가장 깊은 상처를 파고든다.
특히 카라스가 가지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건드리며 그의 마음을 흔든다.
나는 이 장면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때로 눈앞의 공포보다 그 사람이 마음 깊숙이 숨겨놓은 두려움과 죄책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메린 신부는 구마 도중 숨을 거두고, 카라스는 레건에게서 나오라고 악령에게 외치며 자신에게 들어오라고 한다.
악령이 카라스에게 옮겨간 순간 그는 마지막 남은 의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다.
레건은 살아남고 카라스는 죽는다.
그래서 《엑소시스트》의 마지막은 단순한 퇴마의 성공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무당인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사례
이 영화를 보면서 과거 상담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분은 오랫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했고 입원도 반복했던 분이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상담 과정에서 그분이 겪고 있는 문제를 무조건 ‘귀신 때문이다’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무속인의 관점에서 내가 당시 받아들인 모습은 《엑소시스트》의 레건처럼 하나의 강한 악령에게 완전히 지배된 모습과는 달랐다.
내가 바라본 것은 신을 모셔야 하는 집안에서 오랫동안 그것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귀문이 열리고, 여러 혼령이 들어선 상태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시 상황을 바라본 나의 무속적 해석이다.
그분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눈 뒤 굿을 통해 퇴마 의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의식 이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
굿을 했다고 정신과 치료를 중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방받은 약은 계속 복용하도록 했고, 내가 심리상담을 전공했기 때문에 상담 역시 지속했다.
의식을 한 번 했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상담은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그분은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호전되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 변화를 굿 하나의 결과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약물치료와 의료진의 도움, 상담, 당사자의 노력과 생활의 변화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 사이에서
무당으로 상담하다 보면 가위눌림이나 환청, 악몽, 극심한 불안과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귀신이 붙은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증상이 있다고 해서 모두 빙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신체적·정신적 질환으로 나타나는 증상도 있기 때문에 의학적인 확인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무속을 찾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의료가 해야 할 일과 상담이 해야 할 일, 그리고 무속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함부로 뒤섞지 않으려고 한다.
퇴마가 치료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부분은 치료를 받고 상담이 필요한 부분은 상담을 받으면서 무속적 의식은 별개의 영역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엑소시스트》에서도 레건은 처음부터 구마 의식을 받지 않는다.
수많은 의학적 검사를 거친 후에도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이어진 뒤에야 종교적 의식으로 넘어간다.
영화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표현된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순서만큼은 지금 다시 보아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엑소시스트》를 다시 보며
어릴 때 이 영화를 봤다면 아마 돌아가는 머리와 기괴한 목소리, 침대 위의 소녀만 기억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속 현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상담을 공부한 뒤 다시 바라보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악령의 얼굴만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찾아오는 공포,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두려움과 죄책감이다.
나는 무당이지만 모든 문제를 귀신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또 무속을 맹신하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문제일수록 한쪽의 설명만으로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엑소시스트》는 내게 단순한 악령 영화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느냐”보다 더 어려운 질문,
“눈앞에서 고통받는 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묻는 영화였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참고자료
-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
- 윌리엄 피터 블래티, 《The Exorcist》, 1971. 영화의 원작 소설.
- American Film Institute(AFI) 《The Exorcist》 작품 정보 https://catalog.afi.com/Film/54970-THE-EXORCIST?utm_source=chatgpt.com
- IMDb 《The Exorcist》 작품·출연진 정보 https://www.imdb.com/title/tt0070047/?utm_source=chatgpt.com
- Encyclopaedia Britannica의 엑소시즘(Exorcism) 설명 https://www.britannica.com/topic/exorcism?utm_source=chatgpt.com
- 영화 속 구마·빙의에 관한 내용은 작품의 종교적·극적 표현을 바탕으로 하며, 실제 정신건강 문제의 진단이나 의학적 치료를 대신하는 설명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