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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을 믿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신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그 말을 믿어야 할까.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를 보면서 나는 귀신보다도 ‘믿음’이라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무당인 나 역시 신을 모시며 살아가지만, 신을 믿는 것과 한 인간을 절대적인 존재로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바하》는 바로 그 경계가 무너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1. 《사바하》 줄거리, 신을 찾던 목사가 악을 만나다
한 시골 마을에서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다.
동생 금화는 한쪽 다리가 온전하지 않은 채 태어나고, 언니는 온몸에 털이 난 기괴한 모습 때문에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그저 ‘그것’이라고 불린다.
모두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아이는 16살이 된다.
한편 신흥종교의 비리를 조사하는 종교문제연구소 박 목사는 ‘사슴동산’이라는 종교단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영월의 한 터널에서 여중생의 시신이 발견되고, 사건을 파고들수록 사슴동산과 의문의 정비공 나한, 그리고 여러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괴물처럼 보였던 ‘그것’.
하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선과 악의 위치가 뒤집힌다.
사람들에게 성인처럼 추앙받던 김제석은 자신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예언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제거하려 했고, 나한과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세상을 위한 일이라고 믿고 따랐다.
반대로 모두가 두려워했던 ‘그것’은 김제석의 욕망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타난 존재로 드러난다.
결국 《사바하》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악이라고 믿었던 것이 정말 악이었을까.
2. 사슴동산과 신흥종교, 믿음이 맹신으로 변하는 순간
영화에는 기독교와 불교, 밀교적 이미지, 무속적 장면까지 여러 종교의 모습이 섞여 등장한다.
하지만 사슴동산은 실제 불교 종파가 아니다.
장재현 감독은 부처가 처음 설법한 장소인 인도 ‘녹야원’의 의미에서 사슴동산이라는 이름을 가져왔고, 불교의 연기와 순환 개념을 영화적인 세계관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영화 속 종교 설정을 실제 불교 교리와 그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내가 더 흥미롭게 본 것은 종교의 이름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나한은 처음부터 잔인한 악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고 있고, 자신을 거둬준 존재와 예언을 믿는다.
그 믿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나는 이것이 《사바하》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악하다고 생각하면서 악을 행하는 것보다, 선을 행한다고 확신하면서 잘못된 일을 할 때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무당인 내가 《사바하》를 보며 생각한 신앙과 맹신
나는 신을 모시는 무당이다.
상담을 하고 굿과 기도를 하면서 신의 뜻을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신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무당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도 무조건 내 말을 믿으라고 하고 싶지 않다. 신을 믿는 것과 무당이라는 한 인간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아들인 점사가 있더라도 현실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확인해야 하고, 건강의 문제라면 병원에 가야 하며, 법적인 문제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영적인 부분을 다루는 무당의 역할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그 힘을 이용해 사람에게 두려움을 심거나 “내 말만 따라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앙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바하》의 김제석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존재였지만 결국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했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한다.
신을 따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신이 신의 자리에 서려고 했던 것이다.
무당인 나에게 《사바하》는 악귀나 기이한 존재보다 인간이 신앙을 자신의 욕망에 이용하는 순간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4. 진짜 악은 어디에 있었을까
《사바하》는 처음부터 관객의 시선을 뒤집는다.
기괴하게 태어난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악한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종교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는 선한 이미지가 먼저 붙는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그 판단이 완전히 흔들린다.
장재현 감독은 불교의 연기 개념에서 한 존재가 나타나면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존재가 생겨난다는 영화적 구조를 만들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에 집착한 존재가 나타나자 그 균형을 바로잡을 또 다른 존재가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사바하》의 진짜 공포는 괴물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의 믿음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인간이었다.
신앙은 사람을 위로하고 살아갈 힘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한 사람을 절대적인 존재로 만들고, 옳고 그름조차 판단하지 못하게 만드는 순간 그것은 맹신이 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신을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신을 말하는 사람을 믿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사바하》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서늘한 질문도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참고자료
https://www.netflix.com/kr/title/81010699?utm_source=chatgpt.com
https://cine21.com/movie/info/?movie_id=52267&utm_source=chatgpt.com《사바하》(2019), 장재현 감독
씨네21 《사바하》 작품정보 및 장재현 감독 인터뷰https://cine21.com/news/view/?mag_id=92467&utm_source=chatgpt.com
연합뉴스 장재현 감독 《사바하》 인터뷰https://www.yna.co.kr/view/AKR20190221067800005?utm_source=chatgpt.com
장재현 감독의 불교적 세계관·연기설·사슴동산 설정 관련 인터뷰 자료
※ 영화 속 사슴동산과 종교적 설정은 실제 불교 교리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적 모티프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창작된 세계관이다. 무속과 신앙, 무당의 역할에 관한 내용은 필자의 실제 경험과 개인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