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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영화를 보다 보면 악마를 처음부터 절대적인 악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는 조금 다르다.
영화의 주인공 마이클은 처음부터 악마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신의 존재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빙의라고 불리는 현상도 정신적인 질환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느냐고 의심한다.
무당인 나에게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다룬다고 해서 모든 이상한 현상을 영적인 문제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반대로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영적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더 라이트》는 그 경계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1.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줄거리, 믿지 않는 신학생이 구마를 배우다
마이클 코박은 장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고 성장한다.
신학교에 들어가지만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없었던 그는 결국 사제가 되는 길을 포기하려 한다.
그러던 중 바티칸에서 열리는 구마 관련 교육에 참여하게 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구마를 해온 루커스 신부를 만난다.
마이클은 루커스 신부가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계속 의심한다.
빙의가 아니라 정신질환일 수도 있고, 충격적인 경험 때문에 나타나는 심리적 증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루커스 신부 역시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악마에게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마이클은 자신이 알고 있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자신이 믿어왔던 합리적인 세계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구마를 해온 루커스 신부 자신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마이클은 자신이 그토록 의심했던 구마 의식의 중심에 직접 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악마의 이름을 알아내고, 잃어버렸던 자신의 믿음과도 다시 마주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악마를 물리쳤다’는 결말보다 끝까지 의심하던 사람이 무엇을 믿게 되었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2. 빙의일까 정신질환일까, 영화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
내가 《더 라이트》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부분은 구마 장면 자체보다 마이클의 의심이었다.
그는 누군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악마의 짓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부분은 실제 가톨릭 교회의 입장과도 연결되는 점이 있다.
가톨릭 교리에서도 정신질환은 악마의 영향과는 다른 문제이며, 정식 구마를 하기 전에 질병인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환청이나 불안, 우울, 극심한 공포가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귀신이나 악귀의 문제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먼저 적절한 의료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당으로 상담을 하다 보면 현실적인 문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도 접하게 된다.
그럴 때 무당은 신의 매개체로서 영적인 부분을 살펴보고, 그것이 어떤 문제인지 판단하며 필요한 의례나 기도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믿는 것과 무조건 부정하는 것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라이트》의 마이클도 바로 그 사이에 서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의심하지만,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3. 무속의 악귀와 가톨릭의 악마, 닮았지만 다른 존재
앞서 《변신》을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무속에서 말하는 악귀와 가톨릭에서 말하는 악마는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가톨릭에서 악마는 기본적으로 하느님을 거역한 악한 영적 존재라는 신학적인 세계관 안에서 이해된다.
그래서 구마 사제는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으로 악마와 싸운다고 보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교회의 권위 아래 구마를 행한다.
실제로 가톨릭의 중대한 구마 의식은 아무 사제나 임의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교의 특별한 허가를 받은 사제가 행하도록 정해져 있다.
반면 한국 무속에서는 영적인 문제를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악귀라고 부르는 존재도 있지만, 억울하게 죽은 망자나 한과 원을 품은 혼, 집안이나 터에 얽힌 영적인 문제처럼 그 사연과 원인을 살펴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무속에서는 무조건 영을 쫓아내는 것만이 해결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달래고, 한을 풀고, 천도해주는 과정이 중요해지기도 한다.
구마와 굿은 겉으로 보면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다루는 의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종교관과 해결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닮은 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구마 사제도, 무당도 자신을 영적인 세계와 인간 사이를 잇는 매개자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4. 악마의 존재보다 더 중요했던 ‘믿음’
《더 라이트》는 실제 구마 사제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기자 맷 발리오는 미국의 가톨릭 사제 게리 토머스가 로마에서 구마에 관해 배우는 과정을 취재했고, 그 경험을 《The Rite: The Making of a Modern Exorcist》라는 책으로 썼다.
영화는 그 책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등장인물과 사건에는 영화적인 각색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실제 구마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맞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 영화의 진짜 주제가 악마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묻고 있는 것은 믿음이다.
마이클은 악마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악마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믿어야 할 신 역시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악마의 존재와 마주하면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믿음도 함께 찾아간다.
무당인 나 역시 믿음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신을 모신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 믿음을 통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그리고 내가 판단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어디까지 조심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는 단순한 엑소시즘 영화가 아니었다.
악마가 정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이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자신이 직접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면 끝까지 같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반대로 믿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믿음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더 라이트》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악마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흔들리면서도 다시 자신의 믿음을 선택한 인간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영화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The Rite, 2011), 미카엘 하프스트롬 감독
Netflix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작품정보https://www.netflix.com/kr/title/70155537?utm_source=chatgpt.com
작품의 기본 줄거리, 출연진 및 도서 원작 영화 정보 참고
씨네21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작품정보 및 영화평론https://cine21.com/movie/info/?movie_id=31132&utm_source=chatgpt.com
영화의 줄거리와 마이클의 믿음과 의심, 구마를 중심으로 한 작품 해석 참고
Matt Baglio, 《The Rite: The Making of a Modern Exorcist》
게리 토머스 신부의 로마 구마 교육 과정을 취재한 논픽션으로 영화의 모티브가 된 자료
Los Angeles Times, 게리 토머스 신부 및 영화 《The Rite》 관련 기사https://www.latimes.com/entertainment/la-xpm-2011-jan-27-la-et-exorcist-20110127-story.html?utm_source=chatgpt.com
영화가 실제 구마 사제의 경험에서 어떻게 영감을 얻었는지 참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673항https://www.vatican.va/content/catechism/en/part_two/section_two/chapter_four/article_1.html?utm_source=chatgpt.com
구마의 의미와 정식 구마의 조건, 정신질환과 악마적 현상을 구분해야 한다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 참고
※ 영화는 실제 인물과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상당 부분 극적으로 각색된 작품이다. 무속의 악귀와 가톨릭의 악마는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에서 형성된 개념이므로 동일한 존재로 단정하지 않았다. 무속과 영적인 문제에 관한 부분은 필자의 경험과 개인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