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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로이》 리뷰|불러낸 존재를 다시 봉인할 수 있을까? 무당의 시선으로 본 ‘저주’

cheonjidang 2026. 9. 18. 21:15

목차


    불러들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다시 돌려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컬트 영화를 보다 보면 인간이 호기심이나 욕망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불러내고, 문제가 생기자 다시 봉인하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일본 영화 《노로이》 역시 그런 이야기다.

    하지만 무업을 하는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은 따로 있었다.

    “사람이 불러낸 존재가 감당할 수 없는 악한 존재였다면, 인간이 원한다고 다시 쉽게 봉인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처럼 시작되는 저주의 기록

    《노로이》는 고바야시 마사후미라는 초자연 현상 연구자가 남긴 영상 기록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고바야시는 괴이한 현상을 취재하고 기록하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한 여성으로부터 옆집에서 밤마다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 집에는 이시이 준코라는 여자와 어린 남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고바야시가 취재를 시작하자 준코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이사를 가버린다.

    그런데 이후 주변에서 죽은 비둘기들이 발견되고, 제보했던 여성과 딸까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처음에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던 사건이다.

    하지만 고바야시가 조사를 계속할수록 이상한 일들은 하나의 이름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카구타바.

    사라진 소녀와 이상해진 여배우

    또 다른 사건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 카나가 등장한다.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특별한 능력을 보이던 카나는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다.

    그리고 마츠모토 마리카라는 여배우에게도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마리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반복적으로 고리 형태의 물건을 만들고, 주변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소리와 현상이 이어진다.

    고바야시는 처음에는 각각의 사건을 따로 조사하지만 점점 그 모든 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오래전 사라진 마을과 카구타바를 둘러싼 의식이 있었다.

    끝나버린 마을, 끝나지 않은 의식

    고바야시는 향토 자료를 조사하면서 과거 시모카게라는 마을에서 카구타바와 관련된 의식이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은 카구타바라는 존재를 불러냈고, 그것을 통제하기 어려워지자 봉인하고 달래기 위한 의식을 이어왔다.

    그러나 댐 건설로 마을이 사라지면서 오랫동안 이어오던 의식 역시 중단된다.

    여기서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준코의 정체도 연결된다.

    준코는 과거 마지막 의식을 집전했던 사람의 딸이었다.

    즉 영화 초반부터 등장했던 이상한 여자, 실종된 소녀, 죽은 동물, 마리카 주변의 괴이한 현상들이 모두 오래전 카구타바와 관련된 의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부분부터 나는 영화의 공포보다 ‘봉인’이라는 말 자체를 유심히 보게 됐다.

    무당의 시선|불렀다고 해서 마음대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여기부터는 영화의 설정이 아니라 무업을 하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견해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를 불러냈다가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그것을 다시 봉인하고 달래기 위한 의식을 이어간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신이라고 생각해 불러 모셨는데 그것이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악한 존재였다면, 과연 인간이 원한다고 쉽게 다시 봉인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 무속에도 집안과 혈연을 통해 무업과 의례 전통이 이어지는 세습무가 있다.

    그렇다고 후손이 무업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신앙과 전승을 어느 날 간단하게 ‘봉인한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내가 무속에서 받아들이는 관점에서는 신적인 존재와 잡귀 역시 같은 차원의 존재라고 보지 않는다.

    신의 힘으로 잡귀를 누르거나 물리친다고 보는 것과,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존재를 불러놓고 다시 가두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악신이라고 표현하는 존재는 단순히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영악하게 인간의 욕망이나 두려움 사이로 스며들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존재를 함부로 부르는 행동 자체를 경계한다.

    사람은 왜 알 수 없는 존재를 부르려 할까?

    이 부분은 심리적인 관점에서도 흥미롭다.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궁금하고,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며,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때로는 힘이나 복, 재물과 성공을 얻고 싶은 욕망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도 한다.

    문제는 그 존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문을 여는 것이다.

    《노로이》 속 사람들도 자신들이 시작한 일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무서웠던 것은 카구타바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어느 순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버리는 과정이었다.

    다시 시작된 의식, 그러나 저주는 끝나지 않는다

    고바야시는 과거 마을에서 행해졌던 의식을 다시 시도한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기괴하게 흘러간다.

    실종됐던 카나의 흔적과 죽은 동물들이 발견되고, 준코와 카나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건도 드러난다.

    고바야시는 준코와 함께 있던 어린 남자아이를 발견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그 선택조차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된다.

    고바야시가 구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오히려 카구타바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암시가 나타나고, 결국 그의 가정까지 파괴된다.

    집은 불타고 아내는 죽으며 고바야시는 실종된다.

    처음에는 저주를 조사하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자신이 조사하던 저주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노로이》가 남긴 질문

    《노로이》에는 화려한 퇴마 장면이나 귀신이 계속 튀어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다.

    대신 작은 사건 하나를 던져놓고 또 다른 사건을 붙이면서 관객을 천천히 저주의 중심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래서 보고 난 뒤 오히려 찝찝함이 오래 남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를 부를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영적인 존재를 다루는 일은 호기심으로 시험해볼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카구타바를 봉인하고 달래기 위한 의식이 등장하지만, 무당인 나의 관점에서는 애초에 정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존재를 불러놓고 인간의 의식만으로 다시 완벽하게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문을 여는 것은 인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을 닫는 것까지 인간의 뜻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내게 《노로이》는 바로 그 두려움을 보여준 영화였다.

    귀신을 보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어쩌면 자신이 무엇을 불러냈는지도 모르는 것인지 모른다.

    참고자료

    영화 《노로이》(ノロイ, Noroi: The Curse, 2005), 시라이시 코지(Kōji Shiraishi) 감독

    https://www.imdb.com/title/tt0930083/?utm_source=chatgpt.com
    영화 본편 및 공개된 작품 정보를 참고하여 줄거리를 정리했습니다.

    https://globalcinema.kadokawa.co.jp/library/entry-3173.html?utm_source=chatgpt.com

    ※ 영화 속 카구타바와 관련 의식은 작품의 공포 설정을 바탕으로 서술했습니다. 신·잡귀·악신·봉인 등에 관한 내용은 필자의 무속 경험과 개인적인 견해이며 객관적·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속과 영적 존재에 관한 해석은 지역·계통·전승 및 무속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